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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09.2019. 예수님의 기적 Ⅶ : 나사로를 살리신 기적. 요11:1~11절


죽음은 우리에게 피할 수 없는 두려움이다. 천국이 존재한다 하더라도 천국이 있다는 것과 내가 그곳에 갈 수 있다는 것은 또 별개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오늘은 죽음에서 살아난 ‘나사로의 기적’을 통하여 우리에게 주는 교훈 3가지를 살펴보자.

1. 하나님을 제한하지 말라

오늘 본문에 보니까 나사로가 병들었을 때에 사람들이 예수님께 와서 ‘나사로가 병들었다’라고 말하지 않고, ‘사랑하시는 자가 병들었다’고 말을 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가 곧, 나사로인지 금방 아셨다. 그만큼 예수님이 평소에 나사로를 끔찍이 아끼고 위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여기서 알 수 있는 교훈이 있다. 그것은 주님께 많은 사랑을 받는 자도 고통과 고난이 있다는 것이다.

사실, 성경은 단 한번도 ‘하나님께 사랑을 받는자는 고통을 받지 않는다’라고 말을 한 적이 없다. 야곱도, 요셉도 하나님의 사랑을 입은 자였지만, 그들의 삶은 고난과 역경 투성이었다. 신자에게 세상적인 만사형통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것이 중요한 이유는, ‘하나님의 사랑은 만사형통이다’라는 신앙의 제한적인 생각을 갖고 있으면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일하시는 모습을 잘 보지 못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항상 삶의 고난이 닥치면 ‘하나님이 나를 벌하신다’는 쪽으로 생각이 흐른다. 그렇지 않다. 주께서 사랑하셔도 병들 수 있다. 하나님을 세상의 상식과 사조로 제한하지 말라.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으로 내 시각을 고정하여 볼 때에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보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왜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자에게 고통을 허락하시는가?

2. 예수님이 곧, 생명임을 알게 하기 위하여

예수님을 믿으면 세상적인 복도 분명히 받는다. 병도 낫고, 사업도 풀리고, 세상적인 명예와 존경도 얻게 되는 경우를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그러나, 이 복은 예수님을 믿으면 얻게 되는 부수적인 것이지 결코 본질이 아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얻게 되는 가장 큰 본질은 무엇인가? 그것은 ‘생명’이다. 설교 첫 서두에 사람들이 갖는 피할 수 없는 두려움은 ‘죽음’이라고 말을 했는데, 그 죽음을 이길 수 있는 유일한 힘은 ‘예수’이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나사로가 병들었다는 얘기를 듣고도 바로 가지 않고, 나흘이 지나서야 베다니에 도착한다. 왜냐하면, 나사로가 사람들에게 의심의 여지없이 완전히 죽기를 기다린 것이다. 그래야, 본인이 병자를 고치는 용한 의원 수준이 아니라, 생명의 근원되는 하나님이라는 것을 증명해 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사로의 두 누이인 마르다와 마리아의 반응이 놀라운 것이, 평소에 예수님을 ‘부활이요. 생명인 것을 믿는다. 죽어도 살 것을 믿는다. 하나님의 아들임을 믿는다’고 고백을 했는데, 실제 무덤의 돌을 옮기라고 하니까 ‘죽은지 사흘이 넘어서 안된다’고 얘기한다(11:39). 이것이 현대의 크리스찬의 모습이다. 많은 크리스찬들이 믿는다고 고백을 하는데 실제로는 지식적으로 아는 것이다. 내가 아는 것을 믿는다고 착각하고 사는 자들이 너무나 많이 있다. 교회가 부흥할수록 ‘교인’은 많은데 ‘신자’가 없다.

예수님이 나사로의 죽음의 사건 때문에 눈물을 흘린 것은 그의 죽음이 가여워서가 절대로 아니다. 그가 비통히 여겼던 것은 늘, 믿는다고 고백을 하면서 실제의 삶과 전혀 연결이 되고 있지 않는 백성들의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다. 그의 눈물은 항상, 그를 따르는 무리들의 ‘믿음 없음’과 관계가 있다.

기독교의 핵심은 세상의 부함에 있지 않다. ‘생명’에 있다. ‘영생’에 있다. 우리의 죄를 씻음 받아 얻게 되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구원’에 있다. 그것이 기독교의 핵심이다.

나사로의 사건이 주는 교훈 세 번째는 무엇인가?

3. 이제는 우리가 기적의 통로가 되어야 한다.

요한복음에 나타난 모든 기적은 ‘표적(sign)’이다. 즉, 내게 일어난 놀라운 기적은 모두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것을 증명하는데 사용되어지는 도구이다. 이것을 본문 4절에는 이렇게 얘기한다.

4 예수께서 들으시고 이르시되 이 병은 죽을 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이요 하나님의 아들이 이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게 하려 함이라 하시더라

신자란, 하나님 앞에 항복한 그 순간부터 그에게 일어나는 그 어떤 기적도, 그 어떤 사건도, 자신을 위한 것은 없다. 우리 중에 아무도 자기를 위하여 사는 자가 없다. 이 땅의 삶의 부유함과 가난함과, 높음과 낮음과, 건강함과 연약함 속에서, 하나님의 일하시는 것을 보는 자이다. 내 육신의 연약함, 비굴함조차도 결코 나를 비참하게 만들 수 없다는 것을 아는 자. 그것이 신자이다.

그 사실을 알 때에, 내게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일에 쓰임 받는 모두가 될 것이다.

나눔 질문

1. 설교 말씀을 들을 때에 가장 마음에 와 닿았던 부분을 나누어 보라.

2. ‘죽음’에 대하여 심각하게 생각해 본 일이 있었는가? 어떤 마음이 들었는가?

3. 현실의 어려움 때문에 하나님을 부정한 경험이 있었는가? 그것을 어떻게 극복하였는가?

4. 오늘 설교를 들어 보니 ‘나는 그리스도를 아는 자 인가, 믿는 자인가?’ 내 신앙의 색깔은 어떠한가?

5. 예수님이 나를 위해서 운다면 무엇 때문에 아파하실 것 같은가?

6. ‘교인은 많은데 신자가 없다’는 말을 들으면 어떤 생각이 드는가? 왜 그런 생각이 드는가?

7. 내가 겪은 놀라운 신앙의 경험을 통하여 불신자가 전도된 일이 있는가? 언제, 무슨 일이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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