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5.2025. 고린도전서 강해(9) 나를 본 받는 자가 되라. 고전4:8~21절
- Soo Yong Lee
- May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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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삶의 지혜가 있다. 그것은 ‘관점의 전환’이다. 즉, 문제를 문제로 보지 않고 관점을 바꾸어 본인이 처한 상황 속에서 장점을 보고 긍정적으로 사고하는 것이다. 이를 통하여 현재 어그러져 있는 마음에 평정을 찾는 방법이다. 이 내용은 기독교에서도 충분히 인용된다. ‘범사에 감사하라’는 말씀에 따라 내 일상의 모든 일에서 감사 거리를 찾아 노트에 적는 것이다.
이 때의 감사는 주로 이러하다. 건강, 주변 사람, 무사고, 날씨를 향한 감사이다. 이 훈련을 통하여 동일한 상황 속에서 긍정적인 것을 보는 눈을 계발한다. 실제로 많은 신자들이 이를 통하여 삶이 회복되었다. 그렇다면 이 신자들의 감사 방법이 세상의 교훈인 긍정적으로 보는 것을 통하여 삶이 변화되는 것과 동일하다면 굳이 예수님을 믿을 필요가 없다. 과연 이 둘 사이의 차이는 무엇인가.
● 둘 사이의 차이
고린도 교회는 세상 것을 풍족히 누리는 자가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다는 인식이 팽배했다. 그런데 바울이 이들을 향해 그것은 성경의 복의 원리도 아니고 바람직한 신자의 상도 아니라고 전한다. 그 예로 고린도 교인들은 부유하지만 자신은 비천함을 말한다. 자기 자신은 ‘세상의 더러운 것’과 ‘만물의 찌꺼기’ 같이 되었다고 한다.(13절)
그런데 바울은 이러한 자신의 처지 속에서 관점을 바꾸어 긍정적인 것을 찾아 감사하거나 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이 놓인 처참한 상황을 이렇게 말한다. 그것은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이 하셨다’고 얘기한다. 무슨 말인가. ‘하나님의 주권’을 말한다. 내게 벌어진 모든 일은 우연 혹은 내 실수로 벌어진 일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의도적으로 나에게 행한 일이라는 것이다. 내 인생에 ‘하나님의 개입’이 있음을 말한다.
이것이 세상의 교훈과 큰 차이이다. 세상의 방법은 주어진 상황 속에서 긍정적인 것을 찾아 감사한다. 하지만 기독교인들의 감사는 그런 것이 아니다. ‘내 인생에 우연은 없다. 내 인생은 하나님의 주관하신다’는 고백이 담긴 감사이다.
그럼, 이 둘 사이에는 어떤 차이가 있는가. 그것은 ‘하나님의 주권’이다. 그분에 대한 믿음을 통하여 내게 이런 일을 행하신 하나님의 뜻, 이유를 찾는 것이다. 바울은 자신이 당한 고난을 어떻게 해석했는가. 바울의 경우를 살펴본다.
1) 정확한 복음의 의미 전달
극심한 가난에 처한 사람은 불행하다. 그런데 하나님의 큰 일꾼인 바울이 가난하다. 주리고, 목마르고, 헐벗었다. 그런데 그는 자신이 처한 상황에 휘둘리지 않는다. 심지어 극단의 상황인 감옥 안에서도 기뻐한다.(빌4:4)
이것은 기독교의 궁극적인 복이 세상 것에 있지 않음을 잘 보여준다. 어떻게 감옥 안에서 기뻐하는 것이 가능한가. 이런 이유 때문이다. 바울이 감옥 안에서 동요가 없는 모습을 보고 이를 지켜본 간수들이 예수를 믿기 시작했다. 바울이 가장 좋아하는 일은 ‘복음 전파’이다. 그런데 그 안에서도 복음이 전파되니 이것을 경험한 바울이 기뻐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 복음은 세상에 묶이지 않았다. 그것을 가장 잘 보여 주기 위해서 하나님을 바울을 확실한 실례(example)로 사용한 것이다.
2) 성도의 위로
바울이 고난을 당하는 모습을 보고 성도들이 위로를 받았다.(고후1:6) 그의 고난은 성도들에게 ‘혼자가 아니다’라는 강력한 위로를 제공한 것이다. 성도들은 하나님의 큰 사도도 고난을 받는 모습을 보며, 자신들이 받는 고난이 비정상적이거나 하나님의 버림을 받은 증거가 아니라는 확신을 하게 되었다.
이는 마치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간의 몸을 입고, 인간이 당한 모든 고통과 어려움을 다 겪으신 것과 비슷하다. 우리가 겪는 모든 고통을 동일하게 겪으신 예수님이 우리에게 ‘너희의 고통을 안다’고 하시니 큰 위로가 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히4:15) 바울은 그 일에 쓰임을 받는 것이다.
3) 하나님의 능력을 보임
바울은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않고 오직 능력에 있다고 한다.(20절) 고린도 교인들은 지혜, 화려한 언변, 그리고 특별한 은사를 신자의 능력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바울이 말하는 하나님의 능력은 무언가 특별한 것을 소유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능력은 사람을 변화시키고, 인생을 구원하는 힘을 말한다.
바울은 많은 고난을 겪었다. 그런데 그가 다니면서 맺는 열매는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고, 변화를 빚어내며, 하나님의 나라가 이들의 삶에서 실현되는 것을 만들어냈다. 복음의 위대한 힘은 여기에 있다. 아무리 어려운 순간 속에서도 좌절하지 않는 것이다. 그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십자가를 바라보고 힘을 얻는 것이다.
그렇다. 우리에게 ‘믿음’이 필요한 때는 어려운 순간 일 때이다. 모든 것이 형통하고, 평탄할 때에는 굳이 믿음이 필요 없다. 그러나 인생의 가장 어두운 그늘을 지날 때에는 믿음이 필요하다. 그렇기에 어려운 일이 있을 때 무너지면 안 된다. 그 때를 위해서 훈련에 나가는 것, 그것이 우리가 가진 믿음이다.
기독교 신앙의 절정은 가장 어려운 순간에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빛을 발하는 것이다. 바울은 자신이 세상적으로 가장 잘 나가는 시간에는 스데반을 죽였다. 강한 자가 약한 자를 지배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였다. 그런데 그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신앙이 들어갔다.
그 후에 그가 갖는 행로가 바뀌었다. 돌은 던지는 자가 아니라 돌에 맞는 스데반의 위치에 자청해서 들어갔다. 왜냐하면, 그것은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 되기 때문이다.(고전1:18)
그가 그 고난 속에서 자유함을 잃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그것이 십자가의 길이고 그 고난을 통해서 하나님의 능력이 나오기 때문이다. 바울은 이 복음의 원리를 설명하기 위해 ‘나를 본 받으라’고 한 것이다.
● 나눔 질문
1. 설교 말씀을 들을 때에 가장 마음에 와 닿았던 부분을 나누어 보라.
2. 긍적적인 사고와 믿음과 어떤 연관이 있다고 생각하는가.
3. 내 인생의 가장 어려운 때를 돌이켜 봤을 때에 하나님께 가장 감사한 것은 무엇인가.
4. 가난에 대한 나의 생각을 나누어 보라. 종교적, 사회적, 개인적 etc... 어떤 주제이든 좋다.
5. 내가 누군가에게 가장 위로를 받았던 순간은 언제이고, 그가 한 일은 무엇이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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