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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9.2025. 고린도전서 강해(12) 신앙의 문턱. 고전6:12~20절

하나님께서는 신자에게 자유를 주셨다. 그러나 그 자유는 내 마음대로 해도 좋다는 것이 아니다. 그 자유는 정확한 성경적 방향성과 책임을 가져야 한다. 이를 통해 하나님의 자유를 복음 안에서 누릴 수 있다. 그렇기에 바울은 신자는 모든 것이 가하지만, 그것이 모든 이에게 유익한가. 그리고 그 자유를 내가 통제할 수 있는가를 생각해야 한다고 말한다.(12절)

     

● 당시의 교회 상황

고린도 교회는 헬레니즘의 영향 가운데 있었다. 그것은 영은 선하고, 육은 악하다는 영지주의의 이원론 사상이다. 이는 두 가지의 극단적인 태도를 만들었다.

     

1) 금욕주의 

이들은 악한 육체가 선한 영혼을 가두고 있다고 생각했다. 따라서 육체적 욕망과 본능을 억제해야만, 영혼이 순수해져서 구원에 이를 수 있다고 믿었다. 이들에게 구원이란 영혼이 육체와 물질세계로부터 완전히 해방되는 것이었다. 이 때문에 육체를 경시하고 욕망을 거부했다. 그 대표적으로는 성욕과 식욕을 거부하는 것이다. 이로 인해 결혼을 금하고, 음식도 철저히 제한했다. 이는 천주교의 신부나 수도자의 삶과 아주 유사하다.

     

만일 우리 중에 금식, 철야기도, 새벽기도를 할 때에, 육체의 고행을 감수하는 것이 영성이라 여기고 이것을 이겨내는 것이 하나님께 더 가까이 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아이러니 하게도 복음과 아주 거리가 먼, 영지 주의자들이 주장하는 영성으로 가는 것이다.

     

금식도 그러하다. 금식을 하는 이유와 목적이 분명해야 한다. 성경의 금식은 몸을 고통스럽게 해야 하는 요소가 없다. 성경의 금식은 ‘하나님 밖에 이것을 이룰 수 있는 분이 아무도 없습니다.’라는 고백의 행위가 금식이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금식을 하라’는 명령을 한 적은 없지만 오히려 금식할 때에 고행하는 모습을 감추라고 얘기한다.(마6:17) 왜냐하면 금식이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이루어진 신앙 고백이 아니라, 내가 하는 고행을 통해서 깨끗함을 입으려하는 영성으로 발전되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때로는 기도를 많이 하는 것으로 인하여 자기 부인이 생기고 손해 보고, 인내하는 것이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무기가 되어 상대를 찌르는 일이 발생한다. 능력을 받아 원수를 무찌르려고 한다. 이것이 금욕주의 사상이 발전되어 나온 병폐 중의 하나이다.

     

2) 쾌락주의

이들이 생각하는 구원은 어차피 영이다. 육체는 구원의 대상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육체는 아무렇게나 행해도 문제가 안 된다. 어차피 썩어 없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바로 성적인 문란함을 비롯한 쾌락을 추구하는 삶으로 이어졌다.

     

이들의 ‘기독교인이면 모든 것이 가하다’라는 주장에 맞서 바울이 한 대답은 이렇다. 바로 기독교인은 율법에 얽매이지 않고 모든 것이 가능하다. 하지만, 모든 이에게 유익이 되는가. 그 자유함에 내가 얽매이지 않는가를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다.(12절)

     

● 바른 기독교 가치관 

바울은 고린도 사람들의 생각과 자신의 답변(교정)을 극명하게 대조한다. 음식과 배를 비교한다. 그들은 음식과 배는 서로의 목적에 맞게 존재함을 말한다. 이들의 이러한 논리로 식욕과 성욕이 자연스러운 것임을 말한다.


이에 대하여 바울의 대답은 ‘몸은 음란을 위하여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주를 위하여 존재하고, 주는 몸을 위하여 계신다’고 명시한다.(13절) 더욱이 ‘너희 몸은 성령이 거하는 성전’이라 한다.(19절)

     

이 말은 당신의 고린도 교인들에게는 충격 그 자체였다. 왜냐하면 몸은 천하고, 더럽고, 악하며, 썩어 없어질 것으로 생각했는데, 몸이 성전이라 하며, 또한 육체의 부활을 얘기하니 더욱 놀라운 이야기였다.


바울은 이어서 성관계는 두 사람이 한 몸을 이루는 것이기에 매춘을 하여 창기와 성관계를 하는 것은 창녀와 한 몸이 됨을 말한다.(16절) 그렇기에 음행을 피하라고 하는 것이다. 이 말은 도덕적인 문제이기에 하지 말라는 것과는 전혀 다른 얘기이다.

     

사실 이 모든 것은 지엽적인 부분이다. 본질이 아니다. 본질은 음행을 끊는 것에 있지 않다. ‘주와 합하는 것’에 있다.(17절) 내가 그 분과 하나가 되어, 그 분이 보는 것을 내가 보고, 그 분이 보는 것을 내가 행하여 우리의 몸을 통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까지 가는 것이 본질이다. 악한 행위를 끊는 것에 중심이 있는 것이 아니다. 핵심은 의와 거룩으로 가는 것이다.

     

내가 예수를 믿은 후에 ‘무엇을 끊었다. 무엇에 대하여 자유해졌다’에 머무르면 안 된다. 그것은 신앙의 출발이다. 본질은 ‘내가 예수 안에 있는가’이다. 그것 외에 그 어떤 것도 본질적인 것은 없다. ‘내가 정말 예수를 믿는가. 그의 안에 있는가. 내 삶이 그를 위하여 있는가.’이것이 바로 내가 평생을 싸워야 할 본질이고 내가 가야할 방향이다. 본질은 나를 통하여 그리스도가 존귀케 되는 것이다.

     

바로 여기가 우리가 걸려 있는 신앙의 문턱이다. 다 여기에 걸려 넘어진다. 내 삶의 방향이 주님의 영광이 아니라, 내 삶의 안위와 평안이기에 내 죄를 내 노력으로 없애려고 한다. 왜냐하면 그래야 복을 받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십자가를 바로 이해하지 못하는 자에게서 나오는 복음 없는 자의 발상이다. 주와 하나됨을 이루라. 그럴 때에 자연스럽게 내 삶 속에서 성령의 9가지 열매를 거두게 될 것이다.

     

나눔 질문

1. 설교 말씀을 들을 때에 가장 마음에 와 닿았던 부분을 나누어 보라.

2. 내가 이해하던 금식과 말씀을 듣고 깨달은 금식의 차이가 있는가. 나누어 보라

3. 내가 영성을 추구한다고 생각했던 것이 실제로는 금욕주의였던 부분이 있는가.

4. ‘복음은 나를 자유케한다’는 것으로 인하여 실제 삶에서 신자답지 못하게 된 부분이 있는가.

5. 내 신앙이 진보하지 못하고 걸려 있는 ‘신앙의 문턱’은 무엇인가. 혹은 무엇 때문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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