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28.2025. 고린도전서 강해(30) 마라나타. 고전16:5~11, 21~24절
- Soo Yong 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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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설교는 고린도전서의 마지막 장인 16장이 단순한 끝맺음이 아니라, 수많은 문제를 안고 있던 고린도 교회를 재건하기 위한 구체적이고 실제적인 지침서라는 관점에서 출발한다.
설교자는 16장에서 세 가지 핵심 지침을 추출하여 제시한다.
첫째, 동역이다. 바울은 내부의 분열에 갇힌 고린도 교회에 시야를 넓혀 예루살렘 교회를 돕는 등 외부 교회와 연합할 것을 촉구한다. 이는 개별 교회가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는 지체로서 서로의 약점을 보완하며 함께 나아가야 한다는 원리를 강조한다. 설교자는 이를 버지니아 지구촌교회의 과테말라 연합 선교 사역에 적용하며, 사역의 성공 여부보다 '함께 참여하는 것' 자체의 중요성을 역설한다.
둘째, 복음 우선주의이다. 바울이 9장에서 '자비량 선교'를 주장하다가 16장에서 '재정 지원'을 요청하는 모순된 태도를 보이는 것은, 자신의 명예나 일관성보다 복음의 효과적인 전파를 최우선으로 삼았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이를 통해 두 가지 교훈을 도출하는데, 첫째는 필요가 생겼을 때 조지 뮬러의 사례처럼 기도만 할 것이 아니라 사람에게 구체적으로 도움을 요청하는 것이 성경적이라는 점이며, 둘째는 과거의 선언에 얽매이지 않고 복음을 위해 유연하게 사고하고 행동해야 한다는 점이다.
셋째, 함께함이다. 설교자는 바울의 동역자 디모데를 중심으로 이 개념을 설명한다. 디모데는 성격이 유약하고, 육신이 약했으며, 사역에 실패하는 등 여러 약점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바울에게 가장 중요한 인물이었다. 그 이유는 그가 어떤 상황에서든 항상 바울 곁에 '함께 있었기' 때문이다. 이는 사역의 성과나 개인의 능력보다 공동체 안에서 변함없이 자리를 지키고 고난에 동참하는 '함께함'의 가치가 무엇보다 중요함을 시사한다.
결론적으로, 설교는 바울이 편지 마지막에 헬라어 사용자인 고린도 교인들에게 굳이 아람어인 '마라나타'(우리 주여 오시옵소서)를 사용한 의도를 분석한다. 이는 유대인들이 수천 년간 메시아를 기다려온 간절한 마음을 이방인 교인들에게도 심어주기 위함이며, 이 재림에 대한 사무치는 그리움이 올바른 신앙의 근간이 됨을 강조하며 마무리된다.
I. 첫 번째 지침: 동역 (Partnership)
1. 고린도 교회의 근본 문제와 바울의 처방
설교는 고린도 교회가 겪었던 분열, 성 문제, 우상 제물, 은사, 부활 신앙 등 수많은 문제의 근원이 하나, 즉 파벌과 분파주의에 있다고 진단한다. 교인들은 마음에 맞는 사람끼리 모여 지식이나 영적 은사를 내세워 자신들의 우월성을 증명하려 했고, 이로 인해 공동체가 와해되었다.
이에 대한 바울의 처방은 고린도전서 16장에서 구체화된다. 바울은 교인들에게 내부의 갈등에만 매몰되지 말고 시선을 밖으로 돌려 외부의 교회들과 연결될 것을 촉구한다. 그는 예루살렘, 마게도냐, 에베소 등 다섯 개 지역을 언급하며, 흩어진 교회들이 사역과 재정으로 연결된 '그리스도의 한 몸'임을 상기시킨다. 구체적인 예시로, 기근으로 고통받는 예루살렘 교회를 위해 헌금에 동참할 것을 요청하며, 이는 갈라디아 교회들도 이미 참여하고 있는 사역임을 밝힌다.
2. 현대적 적용: 버지니아 지구촌교회의 연합 사역
설교자는 '동역'의 원리를 버지니아 지구촌교회의 상황에 직접적으로 적용한다.
교회 개명: 과거 '한몸 교회'라는 이름이 외부인에게 교회를 설명하기 어렵다는 성도들의 피드백에 따라 '버지니아 지구촌교회'로 개명했다. 이는 더 넓은 연합을 위한 상징적인 변화였다.
과테말라 연합 선교: 개명 이후, 하나님이 한국, 메릴랜드, 버지니아에 있는 지구촌교회들의 연합을 통해 과테말라 선교사 및 자녀(MK)들을 위한 집회를 열도록 이끌고 있음을 설명한다.
일정: 2024년 7월 1일(금)부터 3일(일)까지 3일간 진행.
참여의 중요성: 설교자는 개인적으로 이 사역에 대한 부담이 컸지만, '하나님이 미시는 일'이라는 확신에 순종했음을 고백한다. 그는 이 사역의 성공 여부와 관계없이, 참여하는 과정 자체를 통해 하나님께서 교훈과 깨달음을 주실 것이라고 강조한다.
3. 하나님 나라 일의 본질: 효율성보다 함께함
설교자는 하나님의 일은 세상의 방식과 다르다고 역설한다. 세상의 일은 효율성과 성공을 중시하여 소수의 전문가 중심으로 진행될 수 있지만, 하나님의 사역은 더디고 답답하더라도 모두가 함께 가는 것이 중요하다.
빌립보 교회의 사례: 바울이 로마 감옥에 갇혔을 때, 빌립보 교인들은 수천 마일을 이동해 그를 방문했다. 바울은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고 말하며 그들의 도움이 실질적으로는 크게 필요 없었음을 암시한다. 그러나 바울이 진정으로 기뻐한 이유는 그들의 방문이 성공적이었기 때문이 아니라, 그 행위 자체가 하나님 나라의 복음 전파에 동참한 것이기 때문이다.
결과의 무관성: 빌립보 교인들의 방문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바울은 순교했다. 인간적인 관점에서는 그들의 수고가 '헛것'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설교자는 사역의 가치는 결과나 효율성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 사역에 '동참했다'는 사실 자체에 있다고 강조한다.
II. 두 번째 지침: 복음 우선주의 (Gospel-First Principle)
1. 바울의 모순된 태도와 그 이면의 원리
설교자는 고린도전서 내에서 나타나는 바울의 모순된 태도를 지적한다.
9장: 바울은 자신을 비난하는 이들에게 "나는 너희에게 돈을 받지 않고 자비량으로 사역한다"고 강하게 변호했다.
16장: 그러나 같은 편지에서 바울은 마게도냐와 예루살렘으로 이어지는 자신의 사역 여행 경비를 고린도 교회가 모두 부담하라고 요청한다.
설교자는 이 명백한 말 바꾸기가 복음 우선주의에서 비롯되었다고 분석한다. 바울은 자신의 자존심, 명예, 신의, 일관성보다 하나님의 복음이 진전되는 것을 최우선 가치로 두었다. 복음이 효과적으로 전달되기 위해 재정이 필요하다면, 과거의 발언을 뒤집고 오해를 받는 것을 감수하더라도 필요한 것을 요구했다는 것이다.
2. 복음 우선주의에서 파생된 두 가지 교훈
교훈 | 상세 내용 |
1. 필요를 사람에게 말하라 | 19세기 기도의 인물 조지 뮬러는 "필요한 것이 생기면 사람에게 말하지 않고 하나님께만 말한다"는 원칙을 세웠고, 5만 번의 기도 응답을 받은 것으로 유명하다. 그러나 설교자는 이러한 개인의 간증(체험)이 성경의 원리보다 우위에 있어서는 안 된다고 경고한다. 바울의 사례에서 보듯이, 성경은 필요할 때 사람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것을 부정하지 않는다. 간증은 개인에게 주어진 특별한 은혜일 뿐, 모든 사람에게 일반화할 수 있는 원칙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한다. |
2. 사고의 유연성을 가져라 | 바울은 스스로 내세웠던 '자비량 선교'라는 프레임에 얽매이지 않고 복음을 위해 원칙을 깼다. 설교자는 이를 오늘날 일부 존경받는 목회자들의 경직된 태도와 대조한다. 예를 들어, 과거에 "교회가 커지면 분립 개척하겠다"거나 "10년만 목회하고 떠나겠다"고 선언한 뒤, 교인들이 은혜를 받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 교회를 억지로 나누거나 떠나는 것이 과연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인지에 대해 비판적인 질문을 던진다. 개인의 명예나 약속 이행보다 맡겨진 양 떼(교인)를 돌보는 것이 더 우선되어야 하며, 이를 위해 말을 바꿀 수 있는 유연성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
III. 세 번째 지침: 함께함 (Companionship)
1. 디모데의 역설적 가치
바울이 고린도 교회에 남긴 마지막 지침은 '함께함'이며, 이는 동역자 디모데의 사례를 통해 가장 잘 드러난다.
세상적 관점에서의 디모데: 설교자는 디모데가 세상적 기준으로는 실패자나 부족한 인물에 가깝다고 묘사한다.
성격: 마음이 약하고 두려움이 많아 문제가 생기면 벌벌 떠는 유약한 성품이었다.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에게 "디모데가 상처를 쉽게 받으니 조심해서 다뤄달라"고 특별히 부탁할 정도였다.
신체: 위장병을 앓는 등 육신이 약해 바울이 "포도주를 약으로 쓰라"고 권면했다.
나이: 나이가 어려 멸시받기 쉬웠다.
사역 능력: 리더십과 카리스마가 부족했다. 고린도 교회의 분쟁을 해결하기 위해 파송되었으나, 오히려 상황을 악화시켜 바울이 직접 방문하고 디도를 대신 보내야 했다.
바울에게 디모데가 중요했던 이유: 이러한 수많은 약점에도 불구하고, 디모데는 바울에게 아들과 같고 없어서는 안 될 가장 중요한 동역자였다. 그 이유는 단 하나, '함께했기'때문이다.
변함없는 동행: 그는 바울이 어디에 있든, 어떤 상황에 처하든(감옥 포함) 항상 그 곁을 지켰다.
영적 일치: 바울은 디모데에 대해 "뜻을 같이하는 자가 이밖에 내게 없다"고 말했는데, 여기서 '뜻을 같이한다'는 것은 '영혼이 같다(equal soul)'는 의미이다.
바울을 생각나게 하는 사람: 디모데의 말과 가르침은 사람들로 하여금 자연스럽게 바울을 떠올리게 했다.
2. 성과보다 중요한 존재의 가치
디모데는 눈에 띄는 성과를 내지 못했지만, 바울의 사역에 가장 큰 도움을 준 사람이었다. 결국 바울이 순교 직전 마지막 편지(디모데후서)를 쓰고, 가장 보고 싶어 했던 사람도 디모데였다. 바울은 평생 외로움을 드러내지 않았지만, 마지막 순간에는 디모데에게 "내게 속히 오라. 내가 외롭다"고 고백했다.
이는 사역의 성공이나 개인의 능력보다, 어렵고 힘들 때 돌아보면 항상 그 자리에 있어 주는 '함께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 공동체에서 가장 소중한 가치임을 보여준다. 바울은 이 목회 철학을 디모데에게 계승시켰다.
IV. 결론: 마라나타 (Maranatha)
설교는 바울이 고린도전서의 모든 지침을 마무리하며 던진 마지막 한마디, "마라나타"에 집중한다.
언어적 특이성: "우리 주여 오시옵소서"라는 뜻의 이 단어는 아람어이다. 바울은 헬라어로 편지를 쓰다가 갑자기 이질적인 아람어 단어를 삽입했는데, 이는 성경 전체에서 단 한 번 등장하는 용례이다. (요한계시록의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는 마라나타를 헬라어로 번역한 것이다)
'마라나타'의 의도: 설교자는 바울이 이 단어를 사용한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유대인의 정서 이식: 유대인들은 수천 년 동안 메시아의 도래를 목이 빠져라 기다려왔다. '마라나타'라는 단어에는 그들의 사무치는 기다림과 그리움의 정서가 응축되어 있다.
아리랑 비유: 한국인이 '아리랑'의 정확한 뜻을 몰라도 그 가락을 들으면 눈물이 나는 것처럼, '마라나타'는 유대인에게 그런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단어였다.
신앙의 심화: 바울은 예수를 믿은 지 얼마 안 된 헬라인(이방인) 교인들이 단순히 교리적으로 재림을 아는 것을 넘어, 유대인들처럼 가슴 사무치게 주님을 기다리는 마음을 갖기를 원했다.
최종 메시지: 결국 신앙의 모든 이유는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라는 한마디로 요약된다. 다시 오실 예수님을 향한 이 사무치는 그리움이 믿음으로 승화될 때, 비로소 모든 신자가 올바른 신앙의 길을 걷게 될 것이라고 설교는 끝을 맺는다.
● 나눔 질문
1. 설교 말씀을 들을 때에 가장 마음에 와 닿았던 부분을 나누어 보라.
2. 하나님이 하라고 하시는 일이 있는데, 내 마음에 부담이 되면 나는 어떻게 반응하는가.
3. 사역을 할 때에 '빠르고 완벽하게 끝내는 것'과 '좀 늦더라도 다 같이 하는 것' 중 어느 쪽을 더 선호하는 편인가? 그 이유는?
4. 내년도 과테말라 선교를 연합하여 갈 때에 내가 취해야 할 자세는 무엇이라 생각하는가.
5. 나는 ‘마라나타’라는 말을 들으면 이성적으로 또한 감정적으로 어떤 반응이 나타나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