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1.2025. 고린도전서 강해(7) 성령의 거하심. 고전3:16~23절
- Soo Yong Lee
- May 14
- 3 min read
고린도 교회는 참으로 문제가 많았다. 분쟁, 파당, 은사와 지혜의 자랑이 있었고, 심지어 음행이 있는 교회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도바울은 이들을 향하여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진 ‘성도(Saints)’라고 부른다. 더욱이 그 도덕적으로 문제가 많은 그들 안에 ‘성령 하나님이 계신다’고 얘기한다.(16절)
이 말은 곧, 성경이 말하는 거룩은 우리가 생각하는 도덕적 의미의 ‘순결함, 고귀함’과 다름을 의미한다. 성경의 거룩은 ‘구별되다. 떼어놓다’는 뜻이다. 그러니까 ‘하나님께 속하여 다른 이들과 구분되었다’는 뜻이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택한 백성을 끝까지 책임지는 인생이기에 불신자와는 구별된다. 이런 의미로 그들을 ‘거룩한 자’라고 부른 것이다. 그렇기에 예수를 믿는 모든 신자들은 거룩한 자이며, 이들 안에는 성령 하나님께서 거하신다. 이것이 불신자와 구분되는 다른 점이다.
● 성령의 내주하심의 이유
하나님이 내 안에 들어온 사건은 구약의 예레미야 예언의 성취이다.(렘31:31~33절) 하나님께서 외부에서 우리를 이끌려고 했는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도무지 말을 듣지 않았다. 그래서 내 안에 들어오셔서 아예 내 속을 바꿔 놓으신 것이다.(고후3:3)
내 안에 들어오신 성령님께서 하시는 가장 중요한 일은, 예수님을 주님으로, 구원자로 고백하게 하는 일이다.(고후12:3) 그러니까 믿는 자에게는 모두 성령의 내주가 있다. 예외가 없다. 그런데 성경에는 이미 믿고, 침례까지 받았는데도 성령을 받지 못한 일이 기록되어 있다. 그것은 사마리아 사람들과 에베소 교인들이다.(행8장,19장) 이들은 모두 믿었으나 성령 내리신 일이 없다고 하며, 심지어 성령을 알지도 못했다. 이들은 사도들이 안수할 때에 성령을 받았다.(행8:17,19:6) 이건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가.
이 문제는 ‘성령의 내주하심’과 ‘성령의 부어주심(성령 침례)’을 구분하지 못해 벌어지는 일이다. 성령이 하시는 일 가운데 ‘내 안에 계심’에 관한 부분은 크게 3가지로 말할 수 있다.
1) 성령의 내주(임재, 거하심, Indwelling)
성령이 내 안에 들어온 사건이다. 예수 믿는 모든 사람에게 벌어지는 일이며, 예수님을 주로 고백하게 만들고, 우리의 마지막 순간까지 우리를 떠나지 않으신다. 이것은 내 의지, 내 결단과 상관없이 전적으로 하나님께서 주권적으로 이루신 일이다.
2) 성령의 부어주심(성령침례, 임하심, Anointing)
이것은 성령이 내 안에 계시다는 것에 대한 외적 증거로 나타나는 현상이다. 이 현상을 보고 ‘이 사람 안에 성령이 계심’을 확인할 수 있다. 어떻게 나타나는가. 주로 방언, 예언, 환상 등 신비한 현상으로 나타난다. 또한 이런 가시적인 현상이 아니더라도 평안, 안식, 기쁨 등의 행복한 감정이 동원되기도 한다. 중요한 것은 이런 현상이 나타날 그 때에, 내게 없던 성령이 임하는 것이 아니다. 이미 내 안에 있는 성령을 이러한 현상을 통하여 확인하는 것이다.
예를 들자면, 집에 사람이 있는지 없는지를 어떻게 아는가. 그 집에 불이 들어오고, TV 소리가 나고, 밥 짓는 냄새가 나고, 사람 말소리가 들리면, 그 집에 사람이 있음을 알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이처럼 성령의 부어주심(성령침례)에 대한 신비한 현상들은 내 안에 성령이 계시는 외적 증거이다.
이런 현상은 예수를 믿는 모든 사람에게 나타나지 않는다. 하나님이 주시는 영적은사(Spiritual Gift)이다. 선물이기에 어떤 사람에게는 부어주시고, 어떤 이에게는 그렇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누군가는 성령이 내주하고 계신 것을 평생 동안 전혀 인식하지 못할 수도 있다.
3) 성령 충만(Fullness)
먼저 성령에 관한 표현에 있어 염두에 두어야할 사실이 있다. 그것은 사도행전과 바울 서신에 등장하는 성령에 대한 표현은 아직 성령에 대한 정확한 인지나 신학적인 원리가 정립되지 않은 상태였다는 것이다.(행19:2) 그렇기에 한 가지의 표현이 다수의 의미를 담는 경우도 있으나 일반적으로 성령의 사역을 이렇게 세 가지 범주로 담아 낼 때에 해석이 용이해진다. 또한 성경이 말하는 단어의 의미와 일반적인 의미가 다른 경우가 있다. 대표적으로 ‘성령 충만’이 그렇다.
성령 충만이라고 하면 ‘성령이라는 물질이 내 안에 들어와 나를 채운 상태’로 인식이 된다. 하지만 이것은 ‘성령의 내주’이다. 성령 충만은 성령이 나를 지배하는 상태를 말하며, 우리의 생각과 감정과 의지가 온전히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에 의해 이끌리는 삶을 의미한다.
여기에는 우리의 순종이 요구된다. 그렇기에 ‘성화’에 가깝다. 내 삶 속에서 이루어내야 할 거룩을 향한 노력이다. 성령의 내주와 성령 침례(성령의 부어주심)는 하나님께서 주권적으로 주시는 선물이다. 그렇기에 이것들을 이루는 방법은 내 노력이 아니다. 하나님의 때와 뜻을 ‘기다림’으로 이루어진다.(행1:4)
하지만 성령 충만은 내 노력과 의지가 상당히 중요하다. 성령 충만을 받기 위하여 힘을 써야 한다.(엡5:18) 왜냐하면 성령 충만은 예수를 믿은 후에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관한 ‘성화의 원리’로써 요구되기 때문이다. 이것은 우리가 힘들게 싸워야할 부분이고, 우리를 좌절케 하면서도 반드시 걸어가야 할 영적 수준의 길이요, 싸움이다. 많은 좌절과 어려움 속에서도 꽃 피워야만 하는 우리의 과제이다.
그럼 성령 침례와 성령 충만의 관계는 어떠한가. 성령 침례가 성화를 대신할 수 없다. 하지만, 성화의 과정을 달려 나가는 것에 큰 촉진제 역할을 한다. 힘들게 자전거 페달을 밟는 것이 성령 충만이라면, 누군가 뒤에서 밀어주어 계속 페달을 밟을 수 있게 힘이 되게 하는 것이 성령 침례이다.
성령 충만이란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로서, 예수 그리스도를 내 삶의 주인으로 모시는 과정 속에서 끊임없이 싸워야 할 하나님의 요구와 권면과 명령에 대하여 자기를 복종시키는 순종의 삶을 의미한다. 그 과정을 돕는 역할을 하는 것이 성령 침례(부어주심)이다. 하나님은 내가 기대하는 바로 그 은사를 주지 않으실 수 있다. 하지만 분명히 내게 필요한 가장 좋은 것을 채워 주실 것이다. 이것을 이해하는 자가 바로 ‘내가 하나님의 것’임을 알 수 있게 된다.(23절)
● 나눔 질문
1. 설교 말씀을 들을 때에 가장 마음에 와 닿았던 부분을 나누어 보라.
2. 내 안에 성령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느낀 적이 있는가. 그 때 어떤 생각이 들었는가.
3. 성령의 부어주심(성령 침례)을 받은 경험이 있는가. 어떻게 부어주셨나.
4. ‘성령 침례가 성화를 대신할 수 없다’는 것에 대하여 생각을 나누어 보라.
5. 성령에 대한 내 생각을 나의 말로 정리해 보라.
Comentario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