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31.2025. 고린도전서 강해(20) 우상 숭배를 피하라. 고전10:14~11:1절
- Soo Yong Lee
- Sep 4,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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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은 지난 8장에서 시작된 ‘우상의 제물’에 관련된 문제에 대한 결론이다. 바울은 이 문제를 설명하기 위하여 광야에서 죽은 이스라엘 백성의 예를 들었다. 그들이 죽은 이유는 크게 네 가지 이유이다. 우상숭배, 음행, 주를 시험, 원망이다. 사실 이것은 ‘우상숭배’ 한 가지로 인하여 파생된 것이다.
많은 경우에 우상숭배라고 하면, 하나님이 아닌 다른 신을 섬기는 것을 ‘우상숭배’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하나님을 섬기는데, 하나님 하고는 아무런 상관없이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는 방법으로 섬기는 것 역시 우상숭배이다. 그 대표적인 예가 ‘우상숭배’를 하다가 광야에서 죽은 이스라엘 백성이다.
이들은 모세가 시내산에 올라가서 하나님으로부터 율법을 받고 있을 때에 산 아래에서 금송아지를 만들어서 경배한다.(출32:6) 우리는 이들이 만든 금송아지를 이방신의 형상으로 생각한다. 그렇지 않다. 이들이 세운 금송아지는 그들 머리 속에 있는 애굽 땅에서 자신을 구출해 낸 ‘하나님’이었다. 그렇기에 ‘여호와의 절기’에 번제와 화목제를 드린 것이다.(출32:5)
무슨 말인가. 그들은 하나님을 섬겼던 것이다. 그런데 그것은 하나님이 원하는 방법이 아니었다.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방법으로 하나님을 섬겼다. 이들 생각에는 이렇든 저렇든 하나님을 섬긴 것이니 하나님이 기뻐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하나님은 어떤 형상도 만들지 말라고 하셨고, 형상을 만들어 절을 하면 그것을 우상숭배라고 하셨다.(출20:4)
● 내가 생각하는 예배
현대 크리스천 중에 많은 신자들이 하나님이 원하는 예배를 하지 않는다. 그들은 하나님을 예배한다고 하는데 실제적으로는 조상 때부터 대대로 내려온 샤머니즘 사상에 사로 잡혀서 예배한다. 신앙생활 역시 마찬가지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그들 스스로의 생각으로 하나님이 분명히 좋아하실 것이라고 여기는 방법으로 하나님을 섬긴다. 그리고는 하나님의 복을 기대한다.
가장 위험한 생각이 '지성이면 감천이다'라는 생각이다. 그래서 기도를 할 때에 하나님이 내게 무엇을 원하시는 가에 대한 생각 보다, 내가 이렇게 정성과 열심을 다하면 하나님이 복을 주실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하나님은 우리의 정성과 열심 보다 우리의 삶의 방향이 당신의 뜻에 맞는가를 훨씬 중요하게 보시고, 신자를 하나님의 뜻에 맞는 길로 인도하신다.
그 대표적인 예가 '갈멜산에서의 엘리야의 기도'이다. 바알신을 섬기는 450명의 선지자들이 그들의 신에게 절을 할 때에는 하늘에서 불이 내리지 않았다. 그러나 엘리야가 기도를 할 때에는 불이 내려 제단을 살랐다. 이 둘의 기도의 차이는 극명히 다르다. 바알 선지자들은 아침부터 저녁 때까지 춤을 추고 소리를 지르며 기도했다. 심지어 자신의 몸에 상처를 내는 광적인 행동까지 했다. 하지만 아무런 응답이 없었다.(왕상18:26)
반면에 엘리야는 딱 한번 기도했다. 심지어 몇 문장도 아니었다. 언제부터 기도했는가. 그들의 기도가 끝난 이 후인 저녁때부터이다.(왕상18:29) 그런데 그 짧은 기도에 하나님이 응답하여 하늘에서 불이 내렸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엘리야는 기도하러 가기 전에 이미 '비를 내리겠다'는 하나님의 말씀이 있었다. 엘리야의 기도가 비를 내리게 한 것이 아니다. 그 기도가 있기 전에 '하나님의 말씀'이 엘리야에게 있었다.(왕상18:1)
갈멜산의 사건은 '기도의 능력'을 소개하는 자리가 아니다. 기도의 양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어떤 생각을 가지고 계신가, 하나님은 내가 무엇을 하기를 원하는 가에 대한 주님의 말씀을 듣는 것이 우선되지 않으면, 마치 바알의 제사장들처럼 기도의 양만 내세우고 응답을 받지 못하는 일이 생길 것이다. 또 다른 우상 숭배가 있다. 우리가 섬기는 가장 큰 실제적인 우상은 ‘나 자신’이디.
● 나 자신
이스라엘 백성들이 금송아지를 만든 것을 보고 하나님은 그 이유를 ‘백성들이 자기를 위하여’ 행한 것이라고 하셨다.(출32:8) 이것이 우상의 본질이다. 이들이 맞이한 네 가지 문제는 다 동일하다. 그것은 ‘하나님의 요구, 계획 vs. 내 요구, 계획’이다. 모두 이 둘의 싸움에서 파생된 것이다.
인간은 자신의 욕심과 욕망을 채우기 위하여, 언제나 거기에다 종교적 의미와 명분을 부여하는 신을 하나 만든다. 그런데 그 신은 자기가 만든 신이다. 자기 욕심대로 살고 싶은 것을 우상이라는 이름을 세워서 종교적인 명분과 형식으로 감추고 실상은 자기가 주인 노릇하는 것. 그것이 우상숭배라는 이름 아래 감추어진 자기 숭배(self worship)이다.
인간은 스스로 판단하고 사고하는 자유가 있다. 하지만 그것이 마음대로 살아도 좋다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은 인간이 스스로 주인이 되려 할 때에는 명확하게 인생은 하나님의 것이라는 것을 알게 하신다. 성경에는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신 목적이 분명하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이다.(사43:7) 피조물인 인간은 하나님의 창조 목적에 맞게 살아갈 때에 이 땅의 삶에 의미가 더해질 것이다. 그것은 무엇인가.
● 목적에 맞는 삶
내가 가진 자유와 권리를 누군가를 위하여 사용하는 것이다. 바울은 고린도 교회의 우상의 제물과 관계된 세 가지의 문제에 대하여 하나 하나 지침을 했다. 신전에 가서 제물을 먹는 부분은 절대로 먹지 말라고 가르쳤다. 하지만 시장의 고기를 먹는 것과 집에 초대 받았을 때에 나온 고기는 묻지 말고 먹던지, 누군가 ‘이것은 신전에 바쳐진 제물이었다’고 말하면 먹지 말라고 했다. 이 세 가지 경우의 지침 모두 혹시나 신앙이 약한 자들이 시험 드는 일이 생길 것을 염두에 둔 것이다.
이 모든 것은 한 가지 사실을 말한다. 그것은 내가 가진 지식으로 옳고 그른 것으로 판단하지 말고, 나의 행동으로 영향 받는 자의 유익을 구하라는 것이다.(24절) 신자의 삶이란, 덕을 세우고, 남의 유익을 구하고,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삶을 사는 것이다. 그것이 신자의 생애와 삶의 원칙이 되어야만 한다.
● 나눔 질문
1. 설교 말씀을 들을 때에 가장 마음에 와 닿았던 부분을 나누어 보라.
2. 내 신앙생활을 돌아 볼 때에 말씀에 근거하지 않고 습관적으로 당연히 해온 종교적 행위는?
3. 내가 기도의 양을 채우려고 한 행동들이 있는가. 그것이 내 신앙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가.
4. 내 자신이 우상이 되어 있음을 느낄 때가 있는가. 어떤 경우이고 이런 경우에 어떻게 행동하는가.
5. 나와 관계있는 사람들에게 유익이 되게 하기 위하여 나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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