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21.2025. 고린도전서 강해(23) 영적인 은사의 두 가지 의미. 고전12:1~11절
- Soo Yong Lee
- Sep 25,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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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전서 12장, 13장, 14장은 ‘은사의 장’이라고 불린다. 이 장들은 교단과 교파에 따라 상당히 많은 논란을 만들어낸 장이기도 하다. 그것은 본문 1절의 ‘신령한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가, 어떤 목적과 시각을 가지는가에 따라서 신앙의 색깔이 완전히 달라지기 때문이다. 이에 대한 두 가지 관점을 살펴본다.
● 협의적 관점
‘신령한 것들’을 ‘초월적 은사’로 보는 것이다. 말하자면 방언, 예언, 치유 등 인간 인식의 범위를 넘어서는 초월적인 현상들을 말한다. 이런 관점으로 봤을 때에 충돌하는 두 가지 견해가 있다.
1) 은사 중지론: 이런 영적인 은사가 사도 시대 혹은 초대 교회 시대에 끝났다고 보는 입장이다. 당시에 이런 은사가 필요했던 이유는, 사도들이 전하는 복음이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라는 것의 확증과 교회의 토대를 세우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성경이 66권으로 완성이 된 이 후에는 더 이상 새로운 계시나, 기적이 필요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2) 은사 지속론: 방언, 예언, 신유 등 이러한 영적인 은사가 오늘날까지도 계속 지속되며 교회가 영적으로 성장하고 부흥하는 과정에서 여전히 이러한 현상들이 나타난다는 주장이다. 이들은 영적인 은사가 사도 시대에만 머무르지 않고 여전히 현재에도 교회에 유익하다고 믿는다.
‘중도론자’도 있다. 이들은 영적 은사가 여전히 존재하지만, 부분적으로 존재한다고 믿는다. 이 모든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런 영적인 은사에 대하여는 매우 다양한 견해 차이가 있음을 말한다.
개인적으로는 영적인 은사 운동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단호하게 ‘은사 중지론’을 지지하면 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제적으로는 노늘 날에도 이런 영적인 은사가 존재한다고 본다. 왜 그런가.
첫 번째로, 영적인 은사의 유익성 때문이다.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를 계시하기에 조금도 부족함이 없다. 성경은 예수님이 하나님이시오, 구원자라는 것을 완벽하게 가르쳐 주고 있다.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것을 증명하는 것에는 성경 하나면 족하다.
그러나 문제가 있다. 불신자는 성경을 보지 않는다. 또한 문맹률이 높은 나라가 여전히 많다. 즉, 다수의 사람들이 성경을 읽지 못하거나, 읽어도 이해하지 못한다. 이들에게는 예수님을 처음 접하기 위한 한 방법으로 초월적 현상이 하나의 접촉점 역할을 한다. 이들은 이런 영적인 은사를 가진 사람과의 만남을 통해 복음을 알게 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특별히 선교지에는 이런 초월적 현상이 많이 일어난다. 그곳에서는 이런 방법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가 전파된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영적인 은사를 받은 자를 사용하시는 것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영적인 은사가 존재한다고 보는 두 번째 이유로는, 성경의 가르침이다. 고린도 교회가 갖고 있는 문제는 언제나 ‘내가 너 보다 낫다. 우등하다’라는 것을 증명하려는 것에 있었다. 그 문제는 분파와 지식과 소유 여부로 나타났고. 이는 영적인 은사에도 영향을 줬다. 영적인 은사를 받은 자가 그렇지 않은 자를 영적 수준이 낮게 여겼다. 이 은사의 소유 여부를 자기 과시와 경쟁의 수단을 삼았다.
그렇다면 바울은 이 때에 ‘은사 중지론’을 펼치면 된다. 너희들이 받은 은사는 가짜이기 때문에 이렇게 문제가 많다고 하면서 이제 영적인 은사는 사도로 국한한다고 전하면 된다. 하지만 바울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들의 영적인 은사를 인정하고 하나 하나 구체적으로 그 은사를 설명했다.
다만, 그 영적인 은사가 그치는 날이 온다고 한다. 그 때는 ‘온전한 것이 올 때’ 즉, 예수님이 재림할 때에 그치게 된다고 전했다.(1:7,13:9~12) 즉, 그 전까지는 영적인 은사의 존재를 인정한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신자는 ‘성령의 역동성’은 인정하되 그 영적인 은사가 ‘성경에 합당한가’를 기준하여야 한다. 아무리 뛰어나고 놀라운 기적일지라도 성경에 적합하지 않으면 그것은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 아니다.
● 광의적 관점
로마서는 바울이 로마에 있는 성도들에게 ‘구원’의 소식을 전하기 위하여 썼다. 그는 이들에게 ‘신령한 은사(선물)’에 대하여 설명한다. 그 은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선물’이며, 그 은사는 ‘영생’이라고 한다. 즉 영적인 은사는 넓은 의미로 ‘구원’을 말한다.(롬1:11,5:15,6:23)
우리는 ‘신령한 은사’라고 하면 방언, 예언, 신유 같은 초월적인 것만 영적인 은사라고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다. 은사는 초월적인 것 뿐만이 아니다. 섬김, 가르침, 위로, 구제, 다스림, 지도, 긍휼 등 이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은사이다.(롬12:6~8)
성경이 말하는 은사는 다양하다. 제한적이거나 특별한 것이 아니다. 우리 모두가 또한 누군가는 갖고 있는 것이고, 마음만 먹으면 오늘 내가 당장 누릴 수 있는 것이다. 우리가 영적인 은사를 초월적인 것으로 생각을 하는 것은 우리 인간의 언어가 갖고 있는 한계로 인하여 벌어진 편협한 생각이다.
성경은 은사의 범위를 제한하지 않는다. 구원 자체도 은사이다. 왜냐하면 초월적인 것, 방언, 예언도 내가 노력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듯이 구원도 우리의 노력이 아니다. 이 또한 하나님께서 전적으로 부어주신 은혜요 하나님의 선물이다.
그렇기에 내가 방언, 예언을 하는 것과 누군가를 위로하고 섬기는 것이 전혀 다르지 않다. 은사는 우등, 열등의 개념이 없다. 모든 은사는 그것이 초월적인 것이든, 평범한 것이든 하나님께서 공동체의 유익을 위하여 더하신 것이다.(고전12:7)
또한 명심해야 할 사실이 있다. 그것은 어떤 은사이든지 그것이 성경의 계시(말씀)보다 앞서서는 안 된다. 이것을 기억할 때에 우리는 좋은 것을 우리에게 더하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에게 각인 될 것이다.
● 나눔 질문
1. 설교 말씀을 들을 때에 가장 마음에 와 닿았던 부분을 나누어 보라.
2. 초월적인 은사를 받은 자를 경험한 적이 있는가. 어떤 느낌을 받았는가.
3.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를 완벽히 계시한다. 그러나 잘 읽지 않는다. 왜 그렇다고 생각하는가.
4. 내가 바울의 입장이라면 영적인 은사로 문제에 빠진 그들에게 뭐라고 말을 할 것 같은가.
5. 내가 가진 은사를 한 가지 이상 나누어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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