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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복Ⅳ : 온유한 자의 복. 마5:5절. 11.10.2019

예수님이 말씀하신 온유의 의미는 무엇인가? 온유한 성품을 가지면 받는 복은 무엇인가에 대하여 살펴 보자

1. 온유의 정의

온유의 국어사전의 정의는 ‘성격, 태도 따위가 온화하고 부드러움’이다. 그럼, 예수님이 말씀하신 ‘온유한 자’는 이러한 성품을 가진 자를 말하는 것인가? 성경에 온유한 자로 묘사된 두 인물이 있다. 그것은 예수님과 모세이다. 그렇다면 이 두 사람이 온유했는가? 전혀 그렇지 않다. 예수님의 경우에는 성전에서 상을 뒤엎은 적이 있고, 바리새인들에게는 ‘독사의 새끼들아’라는 심한 욕도 거침없이 하셨다.

‘온유함이 온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더하다(민12:3)’는 모세의 경우는 어떠한가? 모세는 젊은 시절 히브리인을 괴롭히는 이집트인을 살인한 적이 있으며, 반석에 명하여 이스라엘 백성에게 물을 주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무시하고, 반석을 지팡이로 때려서 물을 내어 가나안 땅에 못 들어가게 되었다. 성질을 못 이긴 것이다. 또한 하나님이 손수 쓰신 십계명을 금송아지를 섬기던 이스라엘 백성에게 던져서 깨뜨렸던 사람이다.

여러 가지 상황으로 봤을 때에 성경에서 말하는 ‘온유’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는 다른 의미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성경에서 말하는 온유는 두 가지로 말할 수 있다. 그것은 ‘길들임’과 ‘겸손’이다.

1) 길들임 : 여기에 쓰여진 헬라어 ‘프라우스’는 ‘사나운 짐승을 훈련시키어 주인이 사용하고자 하는 용도에 맞게 변화된 것’을 의미한다. 거친 야생마를 길들여 명마로 만든다는 의미이다. 하나님께서 모세의 불같은 성격을 길들여 이스라엘 백성 수백만을 가나안 땅으로 인도한 위인으로 만들어 내신 것. 그것이 온유이다.

여기서 주목할 점이 있다. 그것은 길들여졌다는 것이 ‘순한 양’이 됨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의 기질과 성격은 변하지 않고 그대로였다. 급한 성격은 여전하지만 그것이 자신의 감정대로 자신의 유익을 위하여 사용되지 않고 하나님의 일을 하기에 최적화된 상태가 되었다는 것이다. 삶의 목적이 하나님을 향하여 바뀌어 짐을 의미한다.

2) 겸손 : 이 ‘프라우스’라는 단어가 성경에 ‘온유’ 이외에 다른 말로 번역이 되어 있는데 그것은 ‘겸손’이다(마21:5). 히브리 말로는 ‘아나브’인데 이 말은 ‘낮아진, 가난한, 억압받는, 짓눌린, 애통한’ 이라는 뜻이다. 그러니까 히브리 사람에게 ‘온유하다’는 말은 환경적인 어려움을 통해서 낮은 마음을 가진 겸손한 사람이라는 이미지를 떠올리게 된다. 그래서 당시 식민지 백성으로 고통 받고 있던 이스라엘 사람들에게는 ‘복이 있도다. 온유한 너희여~’라는 예수님의 말이 큰 감동이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당시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어려운 환경 속에 있기에 이 말이 마음에 남겠지만, 현재의 우리는 그 시대에 비하여 풍족하고 넉넉한 삶을 누리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말은, 현대를 사는 우리에게 하나님께서 택한 자들은 그들로 하여금 영적인 복을 누리게 하기 위하여 우리로 하여금 낮아 질 수 밖에 없는 자리로 하나님이 우리를 몰아가실 것이다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마음이 낮아지면 작은 일에도 하나님의 손길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2. 온유한 자가 누리는 복 : 1) 실제적인 복

예수님은 마음이 온유한 자가 누리는 복은 ‘땅’을 기업으로 받게 된다하셨다. 많은 경우에 우리는 온유하면 손해 본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팔복에서는 온유한 자가 땅을 기업으로 받게 된다고 한다. 이 말은 곧, 하나님께서 너희가 손해 볼 것 같은 성품을 가졌더라도 내가 너를 결코 손해 보지 않게 해 주겠다는 약속이다.

이것은 이삭의 경우에도 확인할 수가 있다. 이삭은 약한 사람이다. 때리면 맞는 사람이고, 자기의 이권을 위하여 물불을 안 가리고 뛰어드는 성품이 아니다. 그런 이삭이 블레셋 땅에서 큰 부를 얻었다. 이를 시기한 블레셋 사람들이 이삭의 우물을 덮어 버린다. 사막에서 우물을 덮는 것은 살인 행위이다. 그렇지만 이삭은 그들과 싸우지 않는다. 그냥 다른 자리로 옮긴다. 이렇게 일곱 번을 옮기는데 옮길 때마다 우물이 터진다. 그것을 보고 블레셋 왕 아비멜렉이 이삭을 두려워한다. 그리고는 이삭을 찾아와 자기를 해하지 말라고 오히려 이삭에게 부탁을 하는 상황이 벌어진다. 이삭의 뒤에 누군가 그를 돌보는 자가 있다는 것을 확실히 느낀 것이다. 이삭을 통하여 아비멜렉은 이삭의 인생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발견한 것이다.

그에게 베풀어지는 하나님의 은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이삭이 일곱 번을 옮겨서 정착한 곳은 ‘브엘세바’이다. 브엘세바가 어떤 땅인가? 하나님이 그의 아비 아브라함과 자신에게 약속한 그 약속의 땅, 가나안 땅이다. 이삭은 여린 사람이다. 그래서 단지 싸우기 싫어서 옮겨왔을 뿐인데, 어느 날 눈뜨고 보니까 하나님의 약속이 내게 이루어진 것을 보게 된다. 이것이 온유한 자가 받는 복이다. 우리가 낮아져서 온유한 성품을 갖게 된다면 굳이 내가 아등바등 살거나, 힘겹게 머리를 쓰지 않더라도 하나님이 준비하신 복으로 이끌림 받게 될 것이라는 약속이다.

2. 온유한 자가 누리는 복 : 2) 상징적인 복

모세는 온유한 자의 대표적인 인물이지만, 하나님이 약속하신 가나안 땅을 밟지 못했다. 바로 그 땅 앞에 있는 느보산에서 죽었다. 아브라함도 말년의 그의 재산은 풍족했지만, 약속한 가나안 땅 전체는 아니었다.

왜 그런 일이 일어나는가? 먼저 모세는 그의 상징성 때문이다. 모세는 십계명을 받은 자로 ‘율법’을 상징한다. 그렇기에 천국(하나님 나라)로 상징되는 가나안 땅을 밟지 못한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의 구원은 ‘율법’이 아닌 ‘믿음’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아브라함의 경우를 보면 땅에 대한 것이 분명해진다. 히브리서 11장에 보면 아브라함은 약속한 것을 받지 못했다는 설명과 함께 그가 궁극적으로 밟게 될 땅, 그 약속의 땅은 물리적인 땅이 아니라 하늘나라임을 말하고 있다(히11:13~16). 곧, 예수님이 말씀하신 땅은, 이미 예수를 믿고 따르는 자들은 영생의 복을 받은 자들이기에 죽은 후에는 하나님이 예비한 그 땅에서 성을 소유하게 될 것이라는 약속이다.

이 땅의 그 어떤 것으로도 우리를 만족하게 할 수는 없다. 그렇기에 이 땅의 것으로 목표 삼는다면 우리는 결코 만족을 누릴 수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이 팔복은, 짧은 이 땅에서 뿐 만 아니라, 너의 마지막 그 이후에도 함께 할 것이라는 하나님의 변함없는 신실함을 우리에게 약속하고 있는 것이다. 때로는 나의 인생에 반전이 없을 지라도 신실하신 하나님은 반드시 나의 인생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은혜를 알게 하는 도구로 사용하실 것이다. 그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팔복의 은혜이다.

나눔 질문

1. 설교 말씀을 들을 때에 가장 마음에 와 닿았던 부분을 나누어 보라.

2. 본인은 온유한가? 세상의 기준과 성경의 기준으로 빗대어 말해 보라

3. 내 삶 가운데 있는 어려움이 해석이 안 될 때에 나는 어떻게 그것을 이겨내는가?

4. 세상적인 기준으로 손해인 줄 알았는데 시간이 흐른 후에 돌아보니 복이었던 경우가 있었는가?

5. 내 인생에 가장 큰 반전은? 또한 반전이 없는 것을 통해 알 수 있는 하나님의 만지심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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